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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나를 길러준 것들. 새로운 것에 눈을 뜨던 어린 날들이여 세상에 흩어진 수많은 말 중에 평생의 성품이 될 어진 말을 배운 날들 사랑을 말하거나 미움을 드러내고 겸손하거나 우쭐대며 나붓나붓 춤추던 고운 말들이여 나를 기른 건 우주에 가득 차서 빛나는 별들과 밤과 새벽, 아침 저녁과 같이 저 홀로 피.. 더보기
영원을 준비하며 세탁기가 세탁물을 짜느라 힘을 다하는 소리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함은 저 정도의 회전과 저 정도의 앙다문 결의는 있어야 함을 뜻하리 새벽잠에 졌던 수많은 날들 멍청한 세상사가 떠미는 대로 흘렀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이겨내고 덜깬 잠에서 부시시 눈을 뜨면 경전을 조용히 읽고 있.. 더보기
바라만보다가 그는 그리 멀지 않게 앉아 있어 아침 저녁으로 마주 하곤했다. 몸을 휘도는 물의 수량은 풍부하여 잉어떼가 서식하고 솔밭에서는 송이가 음지쪽에선 더덕이 정상에선 은사시 미류나무가 뿌리를 내린지 오래 되어 어울림이 아름다웠다. 오랜 시간 흠모한 사랑이 그에게 다가 서게 했다. .. 더보기
바람도 그치고 바람이 종일 겨울을 외쳐댔다. 회오리 춤이 요란하고 반복하는 구호도 사납더니 밤이 되자 바람도 잠을 자는지 아뭇소리 없다. 내 안팍이 고요롭다 배추 몇 포기 절여놓고 씻어 건지려고 시간을 재고 있다. 배추의 뻣뻣함이 숨 죽으려면 소금기가 베어들 시간이 필요하다. 내 삶에도 더러.. 더보기
결혼 40주년 나의 곁을 내어준 사람과 함께 그의 곁을 차지한 세월이 40년 한해의 마무리를 향한 길목 해마다 이때쯤 꽃다발을 챙기던 딸과 추억 다발을 챙기는 딸 덕분에 어느새 마흔 번을 헤아리게 되었다. 어제는 서울로, 오늘은 대구를 다녀오며 늘 함께여서 감사하고 함께 하기에 따뜻한 여행. 추.. 더보기
불면의 밤 화안하게 등을 밝혀 밤과 마주하리라 들여보내주지 않는 잠의 세계 그 문전에서 스스로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느니 내일 새벽에 먼길 가려니 잠들지 못하나 보다 꼬박 밤을 새워 어둠이 걷히지 않은 길을 걸어 홀로 성전을 찾았거늘 이젠 남편이 동행하니 얼마나 신나는가 소풍을 기다.. 더보기
이별/김염삼 전대통령의 서거 이젠 정말 이별인가 봅니다. 한 세대와 다음 세대가 잡은 손을 놓아버리고 떠나가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들에게 그이는 희망의 밝은 빛이었기에 경남중학교 맞은편 대학병원 담을 잇는 찻길 빽빽히 철모르는 아이들도 어른을 따라 악수 한번 하고 얼굴 한번 보려고 사람의 물결.. 더보기
동행 <벌을 서는 중이랍니다.~ㅋ> 가끔 어깃장을 부리느라 정해진 장소 외에 쉬를 하곤 하지만 동행하는 여덟해가 짧게만 여겨진다. 어젯밤엔 잠든 녀석을 안고 나와 바지를 만들려고 칫수를 재었다. 끝났다 싶었는지 다시 자러 가는 것을 '이리 와 아직 안끝났어' 가다 말고 멈춰서서 뒤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