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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되기까지 ​내게 왜 그러나 했습니다 알고보니 미처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자식들에게 속만 파먹히고 껍질만 남는 게 부모라는 겁니다.. ​ 내 어머니의 속을 다 파먹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 껍질 뿐인 노년에도 여전히 어머니라고만 여겼던 날들 ​ 남루한 껍질뿐인 어머니에게 무겁고 힘든 짐만 지어드리고 위로 받는 쪽은 언제나 나였기를 바랬습니다. ​ 아직도 속을 다 내주지 못한 나는 어설픈 사랑의 아픔을 앓는 중입니다 온전한 껍질이 되려면 들어내고 들어내야 할 것들을 헤아려봅니다. ​ 먼저 난 자의 오만 품안에서 젖물린 기억 사랑이라고 쓰담고 안아주던 손의 감각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의 파편들 ​ 시간에 맡겨 모든 기억이 마모되고 흔적마저 온전히 풍화기까지 아직 내 안에 똬리를 틀고있는 질긴 애증 ​ 온전한.. 더보기
가파른 산도 나무를 기른다 우연히 올려다 본 산이 발 디딜 수 없이 가파름에도 나무를 기르고 있었다 ​ 생명을 잉태하는 엄중한 과업은 평평한 들판이나 가파른 산비탈을 가리지 않아 ​ 산은 인내의 산물을 뽐낼만하다 ​ 세상의 가난한 어머니들이여 그대 딛고선 자리가 아무리 척박하고 곤비할지라도 희망을 보듬고 젖을 물려라 ​ 가파른 산도 나무를 기르고 나무들이 마침내 숲을 이루었더라 ​ ​ 더보기
기쁨으로 온 선물 기적은 딸 내외가 하나님의 뜻에 응하면서 일어 났다. 엄마가 되려고 마음 먹는 순간부터 생각이 물질이 되어 아기가 잉태되었다. 아기가 태어난 시간까지 임산부가 된 딸은 소중한 아기를 지키기 위해 먹고 자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경건을 더하고 거룩히 행했다. 훌륭한 남편인 사위는 아내에게 최선을 다해 헌신하며 최고의 아빠가 될 준비를 연마했다. 매일매일 운동으로 젊고 건강한 아빠의 역할을 해내려는 그는 미래를 위한 투자의 대가이다. 준비된 엄마와 아빠에게 태어난 그레이스 세 가족이 우리 삶에 보여줄 아름다운 그림에 가슴이 벅차다. 더보기
그레이시가 태어나요!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거룩하신 사랑의 능력으로 세영이에게 그레이시를 주셨기에 밤새 진통을 하다가 방금 응급으로 출산하게 된다고 알려 왔나이다. 의료진들이 잘 준비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진통을 잘 이겨 내게 세영이를 도와주시옵고 아기의 머리를 아래로 향하는 유도가 어렵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아기의 상태를 면밀하게 잘 보면서 안전한 수술이 되게 도와주소서 집도하는 의사의 손길을 보호하여 주시고 당신의 능력이 의사에게 더하여져 무사하게 두 생명을 지켜주시옵소서 밤새 진통이 있었고 골반이 열리고 있다고 하니 그레이시가 오는 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새해 1월 중에 탄생하는 그레이시를 환영합니다. 엄마가 되는 세영이가 자랑스럽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취도 편안하게 잘 되어 순산 못지않은 수술이 될 수 .. 더보기
문득 비를 머금은 하늘이다. 가을은 도처에 와 있다. 잉태중인 과일나무가 힘들어 보이고 콩과식물들의 잎이 노랗다 여름 내 더위와 힘겨루기를 하던 고추가 시들해져 버렸다. 열기가 부추긴 생명들은 가을 기운을 몰고 온 바람 앞에서 어깨를 늘어 뜨려 한없이 초라하다 사계의 변화가 가슴을 저민다 떠나야 하는 것의 서두름이 비 머금은 구름 속에 스미어 있다 누군가 머물다가 떠난 자리에 탄생의 문은 열리고 뭍 생명의 순환과 존재의 가치에 생명을 부여하나니 가고 오는 것의 분주함이 정지화면 같은 순간을 관통하고 있다. 더보기
빌려 온 고향 마을에서 집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골목 옆에는 나무 정자에 비스듬히 노구를 기대고 선 왕버들이 있다. 버드나무가 늘어 뜨린 실가지 사이로 강 건너 바라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워서 볼 때마다 경탄하곤 한다. 나의 고향은 회색빛 도시 부산. 전후세대에 성장기를 보낸 나는 달리면 뽀얗게 먼지 폴폴 일어나는 신작로에서 뛰어놀며 자라났다. 문학을 하며 시골 태생의 작가들이 비밀 무기처럼 보여주는 고향에 관한 무궁무진한 기억의 단편들이 늘 부러웠다. 실개천, 올챙이, 각가지 풀꽃들과 나비와 벌. 정겨운 낮은 담장 따위 산마을은 산마을 대로 강마을은 강마을이 품은 모래톱과 꼬물꼬물 성인이 되어서도 살아 꿈틀대고 있을 기억 속의 조가비 같은 추억들. 그것들은 아무리 부러워해도 나로서는 근원적으로 가질 수 없는 그들만의 보물.. 더보기
강냉이 울타리 한 여름이 되자 마을엔 집집마다 울타리를 둘러치기 시작했다 ​ ​ 울타리는 봄부터 시시각각 그 키가 자라더니 한여름이 되자 철옹성 같이 견고해 보이는 울타리가 되었다. ​ ​ 이웃이 둘러앉아 강냉이를 쪄 먹으면 무더위도 잠시 즐거움이 되는 여름 ​ ​ 알알이 달고 찰진 보석을 품고 서서 여름의 상징이 된 강냉이 울타리 더보기
가을의 고독 40대 주부였을 때 부산일보사의 꽃방석에 실은 수필 ​ 오늘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두 딸과 남편이 부산스레 집을 나서고 나면 콧노래를 흥을 대면서 나는 청소를 시작한다. 흥겨운 음악은 흥겨운 대로 잔잔한 음악은 우수를 느끼면서 듣는 이 즐거움 오늘따라 비에 실려오는 상념이 더욱 새롭기만 한데 나는 느닷없이 나의 상념에 잠자리 같은 가벼운 날개를 달고 어디론가 감미로운 여행을 떠난다. 나는 이렇게 자신이 빠져드는 상념의 세계를 결코 탓하지 않으며 그것에 나를 맡기는 것을 즐거워한다. 왜냐하면 이 여행은 시공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십여 년 전 여고시절로 가본다. 교정의 몇 그루 나무가 단풍으로 색채를 달리 할 즈음이면 교정의 뜰에는 국화가 다투어 곷망울을 열기 시작했었다. 국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