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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촛불이 타는 동안 당신이 밝혀 둔 먼 빛으로 보이는 촛불 기다림이 촛농으로 흐르는 동안 나의 밤은 슬프디 슬픈 목관 악기를 연주합니다. 만져질 듯 닿을 듯이 가물가물 크게 타오르는 법 없이 조금씩 일렁이는 불빛과 빛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 사이로 밤은 하나 둘 책장을 넘기면서 덮여 가고 묵은 한 해 고스란히 어.. 더보기
유리병 속의 백합 코끝을 스칠 뿐인데 가슴 울렁거리게 하는 향기 유리병에서 벙그는 순간을 들켜버려 붉으레 낯을 붉힌 백합 이 순간은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온뭄의 기관으로 흡입된 향기에만 취하자 물속에서 썩는 제 몸통은 잊은채 최후의 순간까지 한 방울 향기를 길어 올리는 생生 숭고한 것은 이렇게 향기를 남기.. 더보기
큰절을 올립니다. 울분을 거느리고 한여름 소나기 같은 울음 풀어내릴 줄도 모르셨던지 어느날 새벽에 돌아누운 등 너머 가슴을 밀착하며 누울 때에 벼게가 눈물로 젖었음을 알았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흘린 눈물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낮 12가 되면 싸이렌이 울리고 육지와 섬을 잇던 다리가 이음새를 끊고 하늘을 향해.. 더보기
발을 만져줄게 먼길을 걸어 왔을 너의 발을 만진다 열 마디 혹은 백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말이 발속에 사는 걸 알고 있니? 잠자는 너의 작은 발을 만지면 피돌기가 온몸에 펌퍼질 하고 순환되는 온기가 사랑의 말을 대신 한단다 쌓였던 하루치의 고단이 사라지고 가볍게 너를 일으켜 하루를 걷게 할 발 발을 이리줘 .. 더보기
안개속의 보리암 남해 보리암 오르는 아침 직선으로 듬성듬성 내리던 비가 조금씩 그물이 촘촘해지더니 이윽고 소리없는 안개가 숲을 에워 싸 숲엔 서로 엉킨 나무들의 하반신만 남았다 시야를 완강하게 가린 안개 너머 푸르게 드러 누웠을 상주해안 후루룩 들숨으로 남해 바다를 삼켜 본다 산 구비구비 비경을 감춘 .. 더보기
합일/合一 천 년 세월을 수직으로 내린 길이 바다의 표면 위에 꽂히고 있다 비는 몇 번의 생성과 소멸을 거쳐 바다의 몸이 되고 하늘길이 되었을까 비의 길을 타고 내리는 바다를 보아라 춤사위 같은 출렁임을 보아라 애당초 하나였던 저것들, 만남의 환희가 비릿하지 않은가 더보기
어느 하루 전화 번호를 찾는다 전라도 어디서 자란 쌀 20킬로를 시키고 책을 끌어 당긴다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이었다 제목과 지은이만 확인하고 밀쳐 두었던 책 가고 오고 차에서만도 10시간 걸려야 할 길을 가지 못한 날이다 누구의 착오였던 간에 번 시간만큼 부지런을 떨고 싶다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하는 시간.. 더보기
체감온도 열이 나고 있었다 신체중에서 제일 먼저 신호를 받아 뜨거워지는 손 꼭이 잡아낼 통증도 없이 뜨겁기만 한 손 종일 잠의 수렁에 빠져 몸을 쉬게 하였으나 손은 쉬이 식지 않는다 이 신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손사래를 쳐봐도 의지대로 체온계의 눈금을 내릴 수 없다 이런 것이었나? 아픔을 받아 낸다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