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머금은 하늘이다.
가을은 도처에 와 있다.
잉태중인 과일나무가 힘들어 보이고
콩과식물들의 잎이 노랗다
여름 내
더위와 힘겨루기를 하던 고추가
시들해져 버렸다.
열기가 부추긴 생명들은
가을 기운을 몰고 온 바람 앞에서
어깨를 늘어 뜨려 한없이 초라하다
사계의 변화가
가슴을 저민다
떠나야 하는 것의 서두름이
비 머금은 구름 속에 스미어 있다
누군가 머물다가 떠난 자리에
탄생의 문은 열리고
뭍 생명의 순환과
존재의 가치에 생명을 부여하나니
가고 오는 것의 분주함이
정지화면 같은 순간을
관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