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단상

사우스 브로드/ 독서

사우스 브로드는 아주 감동적인 소설이었다.

아름다운 문체로 된 이 소설을 읽고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리뷰를 쓰려던 계획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집안일로 자꾸만 미뤄졌고 오늘은 반드시 리뷰를 남기리라 생각하고 컴퓨터에 앉으려는데 동서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3년 전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데도 절로 살이 빠진다고 좋아하던 동서가 알고 보니 폐암 말기였다.
림프선에 전이된 후였으므로 몇 개월 남지 않은 목숨이라고 의사는 감추지 않고 말해주었다.

가족들은 동서가 워낙 용감하게 병과 맞서 싸우니 위로의 전화를 걸었다간 오히려 동서에게 힘을 얻을 정도였다. 불철주야 막내딸을 간호하시던 어머니와 남편, 무엇보다 두 딸을 남겨두고 떠난 동서의 장례를 위해 제천으로 가야 한다. 다녀와서 31일까지는 이 글을 마저 쓸 생각이다.



저자 팻 콘로이는 사우스 브로드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몸속에 살며 우리가 태어난 날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해 마지막 시간에 완벽한 때를 골라 거칠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거칠게 모습을 드러낸 죽음에 의해 동서는 이생을 떠나버린 것이다. 올해 나이 서른 여덟 살.



사우스 브로드의 소설 말미에서 맺는 말은 인생에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례식에서 돌아온 나는 안식일 예배에 다녀왔고 교회에서 수행 중인 부름에 나의 보좌 한 분이 그 부름에서 해임을 요청하는 말을 들었다.부름을 받고 일 년 동안 그 부름에서 보좌가 수도 없이 바뀌었다.

처음부터 잘못되어 자꾸만 뒤틀려지는 것일까?

인생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면 이건 일어날 일 중 하나가 일어난 셈일까?



이 소설은 화자인 레오의 신문배달 시절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삼 년 전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내 삶의 모든 별들은 경로를 이탈해 헤매는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잘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독자가 신문을 찾기 위해 정원을 샅샅이 뒤졌다는 이야기라도 들으면 꼭 전화를 해서 사과의 뜻을 전했다. 훌륭한 신문배달부는 정확한 때와 변하지 않는 정확성을 지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에서 탄생한다.

나는 내 고객들에게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중략


그렇게 나는, 자전거 바퀴가 돌 때마다 아름다움이 갑자기 튀어나오고

모든 끈기 있는 관찰에 보답하며

모든 각도에서 땀구멍과 혈류로 진입하는 도시에서

날마다 신문을 돌리는 배달 소년이 되었다.


이 도시는 자전거에 올라 목적의식과 의무감이 충만한 채 거리를 달릴 때마다

기억과 꿈이라는 구조물을 만들었고

거기에 배내기와 난간. 팔라디오 양식의 창을 추가했다.

뉴스는 물론 킹가의 미술 전람회나 컬럼비아에서 상원을 통과한 판맷, 가을에 예정된 개기식

마지막 주에 들어선 베를린 옷가게의 폭탄세일 등의 정보로 가득 찬 미사일을 쏘고 또 쏘았다. "



레오는 신문배달을, 그 자신의 까닭 모를 성격과 한 차례의 형언하기 어려운 비극 때문에 파괴된 어린 시절을 구원할 마지막 기회이자 회복의 원천으로 생각했다.

아홉 살에 만난 비극. 그것은 세상의 잔인함이었고 그 잔인함은 레오의 인생이 부담해야 할 몫이었다.

열여섯 살이 되서야 수년간 끔찍한 정신적인 방황을 그치고 죄악의 시기를 완전히 벗어나 주립 정신병원 문을 나섰다.


아름답고 멋졌던 스티브 형이 아버지의 면도날로 동맥을 끊고 자살한 사건은 자신에게, 그리고 도시가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너무나 끔찍한 범죄였다.

차분하고 평범하던 레오의 어린 시절은 형의 자살로 어이없이 끝이 났다.


형의 죽음 이후 레오의 비극은 스티브 형의 발그레한 두 뺨과 운동선수처럼 건장한 체격, 화사한 매력을

다시는 불러 내지 못하는 데 있었고 죽은 형을 발견한 이후 다시는 형을 그 끔찍한 욕조 밖으로 끌어낼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스티브 형이 죽었을 때 주교님은 레오의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여러 어려운 일을 도와주었다.
자살로 인해 가족 묘지에 묻히지 못한 형을 완고한 바티칸의 관료주의를 뚫고 외가 사람들이 묻힌 성모 마리아 성당 성지로 이장시킨 것도 주교님이었다.

형의 몸뚱이를 거부한 성당을 거부하고, 사춘기 특유의 거대한 분노에 휩싸여 천주교 신앙을 포기한 레오를

끊임없이 기다려 주어 성당은 참을성이 많으며 언제나 되돌아오길 기다릴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준 것도

맥스웰 신부였다. 레오의 가족들과 천주교, 신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969년6월16일.

이날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레오의 삶 속으로 동시에 들어온 날이다.


어머니가 한때 수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죽은 형이 수녀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이삿짐 트럭 한 대가 레오의 집 건너편 찰스턴 단독주택의 진입로로 후진해 들어섰고 두 쌍둥이가 이사를 왔다.

그날 어머니가 아들 레오에게 준 임무는 새로 이사 온 댁에 가져갈 과자를 구우라는 것이었고

성 유다 고아원으로 가서 새로 온 학생 둘을 만나 고등학교 삼 학년에 올라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도우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정오에 요트 클럽에서 점심을 먹게 될 것을 새 임무로 추가했다.

마약 단속에 걸린 고등학교 3학년 생 두 명을 만나게 되는 일정이었는데 상류사회에 속한 이들이 레오 어머니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로 전학오게 된 건 마약을 한 혐의로 퇴학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새로 온 흑인 코치의 아들과의 만남이 예정되었다.



인생이란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럭비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기에 더욱 재미가 있는 거라 하지만, 레오가 만난 이날의 친구들은

레오에게 있어 참으로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다.

이들 우정이 어떻게 나타나며 서로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경험의 세계로 그들을 인도할지 모르는 채

레오는 이들과 운명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팻 콘로이의 유장하고 화려한 문체는 이 소설의 전개와 무관하게 나를 사로잡았으므로

두터운 두 권의 소설을 읽는 동안 문장을 단숨에 읽어버리기에는 아쉬워 아껴가며 천천히 읽었다.



사우스 브로드는 근래 드물게 읽은 좋은 책이다.

십 대의 어눌함과 미숙함이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기에 성인이 되어 돌아보는 레오의 소년기에

독자들은 진한 공감과 위안을 받을 것이다.


나름대로 아물리지 않는 상처를 지니고 살아온 주인공들을 통해

인종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되고, 어릴 때 받은 상처로 인해 나머지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불행한 삶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그렇게 자랑스러웠고 빛나는 매력을 가졌던 형 스티브가

주교의 강간에 의하여 스스로 동맥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병으로 죽어가던 주교는

자신은 회개 하였으므로 구원 받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함으로서 가증스런 종교인의 악취나는 신앙에

극도의 분노를 유발한다.

한 소년을 급탈하여 그 소년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부모된 자에게 생의 즐거움을 박탈했으며 상실감을 주었고 형의 죽음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자칫 삶을 파멸로 끌고 갈 뻔한 주인공 레오.

그러나 정신 병원에서 나온 뒤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신문배달이라는 건전한 노동의 힘으로 운명을 이겨낸 두꺼비 레오에게서 독자들은 상처받은 사람도 스스로의 의지로 상처를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를 느낀다.

주인공들에게 일어난 지독한 비극들도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공감되는 것은

세상의 비극이 만연함을 보아온 탓일까

아니면 죄가 무르익는 시대여서 죄에 대한 감각이 둔화된 까닭일까 아니라면 그 모든 불행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보여주 듯이 좌절치 않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불행 가운데서 우리가 취할

마땅한 자세라는 뜻일까

인생은 누구에게나 시험의 장소이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던지 모든 사람은 성장해야 할 분량만큼

정신적 영역과 육체가 성장하고 또 발전한다. 선과 악 사이에서 끊임없는 도전을 받으며 바른 선택하기를

배워가는 것이다.

환경을 변하게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변해서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다.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야깃꾼.

팻 콘로이를 만난 행운에 감사한다.

찰스턴의 친구들은 각자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우정은 아주 다른 존재들을 하나로 묶는

위대한 힘의 근원이 된다.

 

'나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한장의 사진-----시간에 대한 소고  (0) 2016.01.08
남편의 블로그에서 뚱쳐 옴~ㅋ   (0) 2015.11.12
나무 회상록  (0) 2015.10.25
새벽  (0) 2015.10.23
심심하다.  (0) 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