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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상

주머니 속의 시집/ 시평- 아내의 텃밭

*아내를 먼저 보내고 思婦詞(사부가)로 펴낸 시집 '아내의 텃밭'을 읽었다.

여름 장마의 처연한 빗소리를 들으며 펼쳐든 시편들.

아내의 텃밭.1

 

주인 잃은 텃밭에 잡풀만 우거졌네

 

이 빠진 사기그릇의 꿀맛 같은

 

들밥은 누가 내오나

 

열 손톱 흙물 든 손으로 비름 나물 무쳐먹어도

 

배냇짓 아가 입술처럼 곱기만 했던 아내여

 

생각하면 할수록 찬물 한 모금에도 목 메이네

 

신산의 세월이 씹히네.

 

*시인이 기억하는 들밥맛은 그들 부부가 비름 나물에 쓱쓱 비벼먹던 사랑의 맛이었으리라.

가슴이 턱 막혀서 드러누워 읽던 시를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읽는다.

존재가 사라진 자리에 고인 슬픔의 맛에 가슴이 얼얼하다.

아내의 텃밭.4

우리 집 봄날은 언제나 아내의 텃밭에서부터 왔었고

 

올해의 봄날도 어김없이 아내의 텃밭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믿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어서 경칩이 엊그제인데

 

쑥이 오소소 자라고 냉이랑 달래가 줄기를 올리고

 

한동안 그것들 찾아서 두리번거리다가

 

여기도 있잖아.

 

불쑥 내뱉고 나서야 혼자임을 알았다.

 

봄은 어느새 나에게로 왔다가 벌써 떠나갔음도 알았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 하듯이 불쑥 말을 던지고 나니 그 말을 듣고 대답해 줄 아내가 없는 것이다.

37년간의 동반은 둘이 하나의 지체를 이루었음을 말함이 아니었을까 이미 나와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일체를 이룬 아내를 잃고 눈물 쏟았을 시인의 공허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아내의 텃밭.6

 

꽃을 보자고 가꾼 열무가 아닌데

아내 보내는 사이에 열무꽃이 만발이다

열무김치에 꽁보리밥 비벼먹기는 글렀다

돈 주면 사올 줄 알아도

김치 담글 줄 모르는 며늘아기에게

나도 열무꽃으로 피어서

하얗게 피어서

방싯방싯 웃어나 주자

웃고 웃어서 우는 이 눈물을

가뭄 타서 시드는 꽃에게나 뿌려주자

 

*아내를 보내는 사이에 꽃을 피워버린 열무꽃은 시기를 놓쳤다는 점에서 황망하게 보내야 했던 생명에 대한 은유이다. 의연하게 보내는 척 웃지만 웃음은 울음의 다른 표현일 뿐 시인의 애통함은 가뭄 타는 꽃들에게 뿌릴 만큼 홓수

진다.

아내의 텃밭 .11

아침나절부터 비가 흩뿌리고 있다

이 지상에 생명이 되고자 씨앗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쟁깃날은커녕 삽날조차 넣어본 일 없는 묵밭에

철철, 수수 씨앗 뿌리듯 뿌려지는 씨알들이 굵다

방금 떨어진 씨앗들이 열매를 맺는다

비름나물 이파리 가장자리에, 쑥대머리 꽃대궁에

투명한 몸들이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순식간에 익어 낙과한다

수유의 목숨들을 보여주고 있다

태어나고 죽음이 순간임을 알려주고 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목숨들은 하나같이 눈물이 되어

마르고 거친 내 몸과 마음을

정수리에서부터 자근자근 적셔주고 있었다

*위의 시는 아내의 텃밭에 비가 내리는 날. 시인이 읽어낸 목숨에 대한 성찰 때문에 호소력을 갖는다.

씨앗으로 흩뿌려지는 씨알 굵은 빗방울에서 생명을 읽고 비가 만들어 낸 투명한 몸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이미 한 생을 관조하는 혜안의 눈이다. 마른 텃밭을 적시는 비가 생명을 키워내는 젖 물림인 것과 목숨이란 삶 속에 내포된 죽음 때문에 하나같이 눈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이 그렇다.

아내의 텃밭. 13

지금 마악 짧은 가을 해가 넘어갔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해는 졌지만 어둡지는 않아

밭머리 풀밭에 염소 한 마리

방랑하는 순례자처럼 초췌하게 운다

업보를 생각하는 비구니 같다

점점 어두워지면서

울다가 선잠 든 아가처럼

배냇짓 울음을 울곤 한다

아내가 아가에게 젖 빨리는 동안

열두 이랑 캄캄하게 저물던 다랑밭

 

*너무나도 목가적인 그리움을 감출 수 없는 시다.

수필을 쓰던 수필가가 아내를 추억하면서 그리움으로 시를 썻다. 그리고는 시인이 되었다.

아내를 추억하는 시편 중에서도 젊은 날 아가에게 젖 물리던 시절을 반추한 위의 시는 마지막 연으로 하여

수작이라 말하고 싶다.

아내이며, 엄마이며, 다랑밭의 주인이던 아내......... 아내의 부재에 대한 사무침이 눈물겹다.

아내의 텃밭.14

 

대저 모든 생물들은 임자가있기 마련인가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봄부터 늦가을까지

틈날 때마다 호미 들고 삽 들고

하여튼 설칠 수 있는 대로 다 설쳤지만

잡풀들의 기승 앞에 기죽고 말았다.

 

참 무섭다.

저 근육 하나없이 온몸으로 부딪쳐 오는 끈기에

내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상대가 되지 않으니

베트콩 때려잡았던 내 용맹성이라는

성깔도 별무소용이라니

 

얼마나 부드럽고 연약했던지

수줍게 내미는연서 같은 새 순의

이파리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으니

 

내 속 좁은 성질의 마음밭에

돌자갈 가시넝쿨 황무지에

웃음꽃 피게 하던 바람도 그러하였으니

 

*아내의 어진 마음이 부드럽게 남편의 성정을 다스려 온 것에 대한 감사가 스며 있다.

새순의 이파리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만큼 모질지 못하고 마음 연약했던 아내가 속이 좁아 자갈밭이던 남편의 마음밭, 그 황무지를 얼마나 부드럽게 잘 다스려 왔는지에 대한 고마움을 엿볼 수 있다. 그러자니 마음고생 시킨 지난날에 대한 회한인들 왜 없을까?

아내의 텃밭 .16

 

밭둑에 풀이 길로 자라도록

대책 없이 지켜보기만 해야했던

게으른 손이었는데

무서리 한 차례 지나가면서

뒤죽박죽의 내 머릿속이 뚫리네요

 

낮은 데로 몸을 굽혀

앙상한 등뼈만 남았던

아내처럼 뻗어간 호박넝쿨

잔등을 바라봅니다

 

쉬었다 간 자리일까요

아내 얼굴 같은 호박덩이가

비탈진 밭둑을 붙들고 있습니다.

 

내 눈에는 귀하고 아슬아슬해서,

지구보다 크고 우주만큼 둥글어서

이제는 내 가슴속에서 내려놓을 수조차 없습니다.

 

*근래 들어 몇 번을 읽고 다시 읽는 시가 귀하다

기교는 충분하나 기술에 그치는 잘된 시들. 그런 시는 다시 읽어지지 않는다.

영혼이 깃들지 않아 피 돌지 않는 시를 무슨 재미로 다시 읽겠는가

차달숙 시인의 '아내의 텃밭은 외출하는 나의 가방 속에 들어 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읽기도 하고 누구를 기다리는 동안 펼쳐들면서 몇 번째 읽는 중이다.

읽을 때마다 새삼스럽게 눈물 흘리게 되는 망부가! 아내의 빈자리가 마치 나의 상실인양 전이되어 오는 것은

그의 시가 그만큼 진솔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었던 사랑. 너무나 당연해서 잊었던 사랑이 존재가 부재하다는 인식과 맞물리면서 새삼스럽게 솟구치고 더 나눌 수 없는 아쉬움은 한이 되어 가슴 저미는 노래가 되는 것이다.

그리움의 끝이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아내의 텃밭.16은 남은 생애 동안 시시때때로 몸을 바꾸어 호박덩이가 되어 오는 아내를 만난다거나 새의 노래로 말 걸어 오는 아내를 만나면서 살아가야할 시인의 예시적인 운명을 보여준다.

아내의 텃밭.17

 

정작 한 일 없이 추수 끝난 늦가을 아내의 텃밭.

 

저녁노을이 너무 고와서 눈물 같더군

 

서러움 같더군

 

장리쌀 서 말 짊어지고 어스름 산길을 넘어오시던 아버님의

장작개비같이 마른 종아리가 저 저녁노을 같더군

 

저녁노을 빛이더군

 

숨 거두기 전,

며늘아가. 텃밭 한 뙈기는 네게 준다 네 목숨이라 생각해라

 

우직한 아내는 고리채 급전 앞에서도 눈 딱 감더군

 

입도 뻥긋 안 하더군

 

주인들은다 떠나가고.................

 

눈물 같은, 서러움 같은 밭뙈기만 남았더군

 

곧 스러질 저녁노을 같더군

 

*시아버님 상속의 땅인 텃밭, 시아버님의 유언은 우직함이 천성인 시인의 아내에겐 비장한 각오를 하게 했던 것 같다. 고리채 급전을 쓰는 한이 있어도 텃밭을 의연히 지켜낸 것을 보면.

아내는 늘 텃밭에서 가족들의 먹거리를 길러 냈다. 그 먹거리들은 땀과 수고의 결실이라기보다 매 순간마다 가족들의 건강을 유념하던 무조건적인 한 여인의 가족들에게로 향한 헌신의 수유였을 터이다.

아내의 텃밭. 18

 

대한 추위 하느라고

몇 날 며칠을 두고

눈보라가 밀리며

밀리며 몰려가는 한 겨울이어도

아내의 텃밭은 살아서 숨쉬고 있네

 

살 에는 찬바람은

원한의 한숨으로

체념의 한숨소리로

제멋대로 길을 매며 달려가는데

 

온전히 닿지 못한

우리의 사랑은

저, 파랗게질린 시금치

잎사귀 하나로 떨고 있네

 

흙속에 복사뼈 묻어놓고 섰던

바알간 아내의 발목............

언 땅과 같은 내 가슴속 녹이느라고

까막까치가 얼어죽는 밤에도

맨발로 걸어오시는 당신의,

 

저, 바알간 시금치 발목!

 

 

*나는 또 눈물 머금지 않고선 이 시를 마저 읽어내리지 못하겠다.

시인의 아내가 가파른 생의 고난과 신산한 세월을 참아 낸 것은 바로 맨발로 언 땅을 딛고 걷는 것과 같은 남편을 향한 사랑과 희생이 있어 가능하였을 것이다. 그것을 인식하는 남편의 깨달음이 반갑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전하지 못하는 시인의 깨달음으로 하여, 슬프다.

아내의 텃밭.20

 

 

오랜 안부를 묻 듯이

긴가뭄 끝에 차가운 겨울비 내린다

 

해종일 두고 비는

윽박지르듯이 다짐을 놓듯이

뼈끝을 쑤시며 내리는데

 

생각느니 한참 섭섭하고 쓸쓸해서

죽은 잡풀들 둘러쓰고 내다보는

들쥐의 설움 많은 주둥이로 삐쭉이다가

눈물인가.

빗물에 아내의 빈 텃밭 젖듯이

나도 따라 젖었네

 

 

*겨울비가 내리는 날 시인은 아내의 텃밭을 찾아가서 뼈끝 쑤시는 쓸쓸함을 대면하고 울지 않으려 해도 삐져나오는 울음을 기어이 울었나 보다.

아내의 죽음은 생각할수록 마냥 쓸쓸하고 서운하기만 하다.

아내의 텃밭.21

 

 

이 세상에 없는 그리운 얼굴 만나러 갑니다.

삭막한 겨울 들판에는 새들도 날지 않지만

주먹눈 푸짐하게 내려, 내려서

환한 사랑, 추억은 빛나

내 영혼을 울립니다

 

언제나 이곳에서는 나만의 세상.

보낸 수 없는 편지를 쓰면서

비로소 내 사랑에는 빛나는 은유가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음을 느낍니다.

 

슬픔과 위안의 소중한 시간이

작별처럼 여물고 있는

아내의 텃밭.

자식들 몰래 찾아올 때마다

첫사랑입니다.

 

*사랑.......사람 한 생애 동안 사랑의 진실에 닿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이별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는 희석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비록 죽음으로 나뉜 길에 놓여 있어도 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사랑의 진실에 닿았으니 차달숙 시인의 사랑은

획득된 것이리라.

죽음 너머에서 사랑을 더욱 증대시키는 것이 나머지 생의 목표가 된다면 이 생이 얼마나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는 것인지 잘 아는 시인에게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날 기다림은 눈부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내의 텃밭은 1부. 텃밭에서 얻은 시 25편과 2부. 별사 16편 3부. '새 출발을 꿈꾸며'로 되어 있다.

진솔한 사랑의 시를 이웃들과 나누고자 소개하는 방법으로 시평을 쓴다.

시를 읽고 시인의 슬픔에 동참하며 눈물을 흘렸고 떠난 아내의 정서를 헤아림에 감동하였다. 시인의 첫시집 상재를 축하하며 시인으로 걸어갈 나머지 생애에 시가 아내를 대신하는 좋은 동반자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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