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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상

모성과 갯벌

몇 해 전 부산 예총 회장인 최상윤 교수가 부산 문협회장에 당선되었을 때 몇분의 지인들을 불러 경주 콘도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다.지금 현재 부산 문협 회장인 강인수 교수와 부산대에서 국문학을가르치는 임종찬 교수

 

이문걸 교수,정해송 시인 등 그리고 나와 진경옥 시인은 그날 남자 다섯과 함께 밤을 지냈다.
그날 밤, 이 다섯 남자의 행적은 여느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밤새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고스톱판을 벌였다.

아마 그날 밤 우리가 잠시 밤거리에 나갔을 때 서로가 일렬횡대로 서서 서로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어깨동무를

 

하지 않았더라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시를 암송하고 문학을 체험하는 정열의 몸짓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 밤은

 

다른 숱한 밤들처럼 그다지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시를 이야기했다. 최상윤 교수는 그가 대학시절에 암송하고 유달리 좋아했다는 박봉구 시인의 시를 암송했다. 최 교수의 혀 짧은 발음에도 그날 밤 그는 얼마나 맛깔스럽게 시를 먹고 있던지 그 자리에 있던 우리도 그 맛을 함께 음미했다.아름다운 밤이었다.
중년을 훨씬 넘긴 이 남자들이 그날 밤만은 얼마나 천진하게 느껴졌던지!우리는 소리를 높여 동요를 불렀고

 

가사의 아름다움에 경탄했다.시가 우리의 삶에 끼치는 순화의 기능이 그날 밤 우리를 마치 아이들처럼 순수한 경지로 이끌어 갔다.

남자들이 어린 아이처럼 순후한 얼굴이 되어 그들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성이란 여성성도 아니요, 남성성도 아닌 것으로서 제3의 성이라고 입을 모으며 여성이 위대한 것은 바로 모성이라는 특별성을 지닌 까닭이라는 것이었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순결한 그의 연인을 통하여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관용과 초월적인 사랑을 보여 주는 것으로 여성의 모성성을 고전으로 남긴 것 같이 그날 밤의 교수들 또한 부산을 대표하는 작가들 답게 그들이 추구하는 작품에서도 모성을 담아 낼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날 이후 여성과 모성, 모성과 생명이란 주제를 두고 나 역시 제대로 모성을 다루는 글을 써 보리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구가 모든 생명들을 품어 주고 잉태한 자궁과 같다고 보면 갯벌이란 양수에 녹아 있는 영양물질처럼 새 생명이 먹고 자라야 할 환경 같은 건 아닐는지, 바다의 조수에 의하여 먹이 사슬이 이루어지고 조개며 낙지 등 해조류가 자라는 갯벌.
더러는 유해한 독성조차도 자체적인 정화의 기능을 담당하는 갯벌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을 위한 창조주의

 

은혜로운 장치처럼 여겨진다.

대지의 젖줄인 강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면서 형성된 갯벌은 강물과 그 강물이 끌고 내려온 허접한 찌꺼기들을 모두 받아들인다. 이것은 마치 자식들의 허물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또한, 그곳에서 자라나는 모든 생명들에게 생태적 환경을 만들어 주고 영양을 나누어 주는 것마저 자식을 키워내는 어머니의 모성을 닮았으니......
사람에게 모성이란 것이 존재하듯이 지구도 모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모성의 표본처럼 갯벌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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