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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스크랩] 비의 그림/김옥남







비의 그림

김옥남


비가 아침부터
길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점점이 퍼져가는 빗방울들
너의 얼굴은 동그랬지 눈과 코
두툼한 입술선의 음영
굵은 목선은 그리움 때문에 자꾸 덧칠이 되고
여름내 밤마다 잠들지 못한 아픔의 편린들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에 상처로 번져간다
네가 부르는 누군가의 이름이
네 영혼의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면
싸이렌의 노래처럼 치명적 유혹일지도 모르는 것
삶은 그런 것이다 사랑도 그런 것이다
비가 그리는 그림은 선을 감추고 형상들을 뭉개고
갈비뼈 사이에 감춘
깊은 열정만을 암울하게 투사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걸어 간 발자국
비는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기 위하여
지상에 새겨진 모든 발자국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지우는 중이다





출처 : 그대의 소매 속 향기로운 바람..
글쓴이 : 체칠리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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