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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상

나는 잃지 않았다

  문단에 등단하고도 제한된 지면 탓에 문인들 대다수가 홀로 글을 쓰다가 처음 가진 열정을 지속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창작에 게을러진다.

나라고 다르지 않아 1995년 한국예총 예술세계 신인상으로 출발하여 몇 해를 문학 모임에 쫓아다니거나

선배 작가들을 따르는 즐거운 행보를 해오다가 작품생활로 이어지는 방법론에선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인터넷 문학 사이트 문학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그 공간에 있던 다양한 작가들과 매일 한 편 이상의 시를 쓰는

즐거움을 실행하게 되었다. 그 시간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배우는 시간이었고 습작의 기회가 되어 주었으므로 잠을 잊고 창작에 몰두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야후를 찾아 새 둥지를 틀게 될 때만 해도 작품의 수가 천 편 남짓했고 옮겨 놓기에 큰 힘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야후에서 블로깅은 국내의 문학사이트에서 홈을 가진 경험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글을 사용하는 많은 교민들과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공간을 초월하여 자신들이 떠나 왔으나 결코 잊지 않고 절대 바뀌지 않을 한국인의 얼을

그네의 가슴으로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몇몇 분들, 지금은 닉을 기억할 수 없지만 고구마 시스터들( 그들은 서로 방문하여 댓글을 달면 댓글에서 댓글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댓글로 인해 모두들 즐거워했으며 예술을 이해하는 고차원의 언어가 질리지 않아 흥미로웠다.)

그녀들은 서로를 댓글이 마치 고구마처럼 주렁주렁 이어진다고 고구마 시스터라 칭했다. 시원님도 고구마 시스터에

합류하시죠. 라던 그녀들이 그립다.

캐나다에서 매우 독특한 그림을 그리셨던 분과 시를 쓰셨는데 이분 역시 시가 평범하지 않았다.

다른 한분도 문장이 예사롭지 않은 특징을 지녔던 기억이 난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도 매매일 열심히 자신의 족적을

블로그에 새기던 사람들.

 

기억나는 또 한분은 의사셨는데 이분은 나의 못난 시들을 좋아해 주셔서

늘 일본의 피아니스트 구라모토 유키의 피아노 선율을 듣는 것 같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나의 시에 대한 과찬이었던지 꽃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은쟁반에 구슬이 구르는 듯한 피아노의 선율에 빗댄 칭찬이야말로 가슴 속까지 전율을 일으키는 칭찬이었으니!

 

 야후를 떠나 올 무렵엔 작품의 수가 제법 많았다.

이천 편은 못되지만 만만치 않은 이삿짐이었다.

야후를 떠난 건 두고두고 애석한 마음인데 그것은 순수한 정을 나눈 많은 이웃 때문이었을 것이다.

야후에서 작품을 못다 옮겼다. 옮기다가 지쳐서 그만 남겨 둔 채로 조선 블로그를 열었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시들이 결코 나와 분리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며 언젠가는 다시

나의 시 창고로 회복될 거라는 생각이 막연하나마 있어서

야후에 남겨둔 작품들이 그다지 애석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었다.

 

문제는 몇 해를 잘 운영해온 조선 블로그가 블로그를 느닷없이 없앤다는 통보를 했다,

조블에서도 좋은 이웃들이 많았다. 전문 작가 못지않은 필력을 가진 분들과

각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오른 석학들과도 우정을 쌓으며 문학의 즐거움이 지속되었으나

조선 블로그가 예고한 대로 폐쇄를 감행하였다.

물론 소수 블로그는 남기를 희망했고 조블은 그들을 선별적으로 받아 주었다.

 

나의 경우는 영구적으로 보장될 것이라는 확신이 무너진 조선 블로그에 더 이상 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시금 저장된 작품을 이동해야 했을 때는 실로 난감했다.

더 방대해진 이삿짐, 그야말로 대충 이삿짐을 꾸리면서 생각했다.

어디로 가서 자리를 잡을 것인가? 다음과 네이버 두 군데로 시를 옮기다 말고

어디쯤에서 그만 멈추어 버렸다.

딱히 다음도 네이버도 내 집처럼 여겨지지 않는 낯섦에 멈칫거려졌기 때문이다.

벌써 십수 년 동안 나의 삶이었던 시 쓰는 작업이 시들해졌다.

그러는 사이 다음에 디지털 청송 토지 사랑 카페를 열게 되어 그 공간에 시를 가끔 올려 두었으나

좀처럼 탄력이 붙지 않았다.

 

어쩌다 인터넷 상에서 내게는 잃어버린 바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나의 시를 발견하곤 한다.

그때는 반가움에 그 시를 업어다 놓기도 한다. 아무튼 어디엔가 있다,

그래서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의 힘으로 나의 생각의 옷을 입은 또 다른 나이기에 그것이 어디로 사라지겠는가

딸은 아직도 찾지 못한 영혼의 조각들을 아쉬워한다.

 

다음에는 올렸으나 네이버에는 누락된 작품들이 있겠고

네이버에는 올렸지만 다음엔 올리지 못한 작품들이 있겠지만 괜찮다.

좀 더 익어져서 지금부터 더 좋은 시를 쓰면 되지 않겠나.

공연히 다음과 네이버 두 곳에 블로그를 분산시켜 그렇잖아도 귀찮음을 싫어하는 내겐

그 일이 작지 않은 과제다.

 

<2021년 6월 1일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된 글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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