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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시

늙은 부부

공광규

 

오래 살아서

등이 굽은 소나무 두 그루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수저질 한다

 

폭 익은 된장과 고추장 담고

뚜껑에 흰 눈 수북이 얹고 있는

겨울 장독 항아리 풍경이다

 

늙은 부부는 머지않아

흰 쌀밥 수북한 제사상 놋쇠 밥그릇으로

같이 앉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2007년 겨울호 불교문예"신작소시집"[불교문예출판부]에서

 

삶은 허물이라고 한다 그 만큼 남길 것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 삶은 늘 악착같이 살아간다 악착같이 살면서도 허물을 남기니 어찌 열매를 가득 남기고 떠나겠는가 열매를 남겼다고 해도 그 또한 허물의 열매 아닌가 공광규 시인의 "늙은 부부"에서는 허물같은 생이라 해도 진실하게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품어 내고 있다 등 굽은 두 그루의 소나무와 장독 항아리에 수북이 쌓인 눈, 그리고 놋쇠 밥그릇에 수북한 밥이 주는 연상의 끈은 이승의 삶에서 허물을 남기지 않고 살아가려는 의지일 것이다 비단 세월의 풍습이 바뀌어 놋쇠 밥그릇에 제사상을 차리지 않을 수도 있다  세월은 참 많은 허물을 덮어주고 있다 이 세상을 살아왔던 수 많은 살람의 발자국들을 흰 눈처럼 다 덮어주고 있다 장독 항아리도 사라져 가고 온기 따뜻한 정도 사라져 가고 시대의 관습도 사라져 가는데 유독 세월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 만큼 세월이라는 것은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잇는 듯 하다 늙은 부부가 남기고 가는 사랑도 세월이 다 덮어 줄 것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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