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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와 사이프러스

고흐와 사이프러스(Cypresses)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3.30~1890.7.30
개신교 목사의 6남매 가운데 맏아들인 반 고흐는
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 출신의 후기인상파 화가
불꽃 같은 정열과 격렬한 필치, 눈부신 색채를 표현.




"사이프러스" (Cypresses) 1889년.

이 나무의 이름은 사이프러스(Cypress)다.
불란서 남부에서 이태리 북부를 거쳐 터키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에 주로 자란다.

"사이프러스나무(Cypres)"는
늘 고흐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고 한다.
고흐는 처음 이 나무를 보는 순간 어떤 영감이 스쳐갔다.

1889년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사이프러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나의 해바라기 그림처럼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창조해낼 것 같기도 하구나.
사이프러스는 마치 이집트 뾰족탑처럼 균형 잡힌 아름다운 나무다."

이후, 고흐는 사이프러스가 등장하는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린다.
'별이 빛나는 밤', '누런 밀밭과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두 여인과 사이프러스' 등
그의 작품에 사이프러스는 새로운 장르로 등장한다.




"두 사이프러스" (Two Cypresses) 1889년.


그렇다면 고흐가 사랑한 사이프러스는 무슨 나무인가?
사이프러스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는 여럿 있다.
미국에서 널리 자라는 낙우송도 사이프러스라고 부른다.
또 일본의 편백나무나 삼나무도 앞에 Japanese를 붙여 역시 사이프러스다.
구양성서에도 또 다른 사이프러스가 등장한다.

그러나 고흐 그림에 나오는 사이프러스들과는 품격이 다르다.
서양 사람들이 부르는 더 정확한 이름은 "Itailan Cypress"다.
이 나무는 보통 나무들과 달리 가지가 거의 옆으로 퍼지지 않는 홀쭉이 키다리로,
고흐 편지에서 '뾰족탑'으로 표현한 것처럼 아주 독특한 모양을 갖는다.

고흐 그림의 백미, 사이프러스는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나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여러 이름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자라지 않는 생소한 나무인 탓이다.
굳이 비슷한 나무를 찾자면 측백나무, 향나무, 노간주나무다.
그러나 세 나무 중 어느 것도 사이프러스를 그대로 쏙 빼닮지는 않았다.
식물학적으로는 측백나무에 가까우나 잎은 향나무,
전체적인 바깥 모양은 노간주나무를 닮았다.
때로는 고흐의 사이프러스를 삼나무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일본사람들의 번역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두여인과 사이프러스 나무"
(Cypresses with Two Female Figures) 1889년.




"사이프러스 나무와 두 여인"
(Cypresses and Two Women) 1890년.




"사이프러스 가 있는 파란 밀밭"
(Green Wheat Field with Cypress) 1889년.



"밀밭"(Wheat Field) 1889.


타오르듯 요동하며 무성하게 깔린 밀밭,
역시 불꽃 모양을 하고 하늘을 치솟는 올리브색의 측백나무,
휘몰아치는 대기의 하늘,
그러나 화사하게 서로 어울리는 해조의 색채가 억제된 색조에 의하여
지극히 조용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아를르에서 생레미로 옮겨간 고흐는
그곳에서 아를르 시대와는 다른 조화와 성숙을 달성하고 있다.

해를 쫓아다니는 해바라기에 공감 의식을 가졌던 그가
생레미에서는 힘찬 생장력을 가지고 하늘속을 뚫고 오르는
사이프러스를 주제로 열중하고 있다.

얼피보면 그는 격렬한 사나이로만 보이나,
그것은 그의 일면일 뿐, 이 작품이 갖는
안정감,섬세함,조화,억제는 또 다른 일면으로 부각된다.

고흐 자신도 이 작품을
"내가 그린 가장 명성한 작품" 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년


이 밀밭의 사이프러스 그림은
고흐가 가장 많이 재현한 그림에 속한다.

고흐는 색칠하면서 동시에 소묘할 수 있는,
두텁게 물감을 발라 붓을 놀려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표현낼 수 있는 소재를 즐겨 그렸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마치 그림속 불타오르듯 표현되는
이 사이프러스라고 한다.

1889년 9월에 그린 이 그림은
그 해에 완성된 사이프러스가 있는 풍경화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년


생레미에서 발견한 보다더 중요한 모티브는
병원에서 바라보이는 밀밭과 사이프러스였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사이프러스 , 배후의 밭이나 산을 ,
흡사 그 자신의 번민과 희망의 상징인 것처럼 응시했다.

대부분 직선에 가까웠던 아를르시대의 필치 대신
휘어 구부러져 서로 대응하는 필치가 화면을 메운다.
일종의 바로크화인데 그 장대한 리듬의 집합은
한그루의 사이프러스라 할지라도 거대한 마음의 상징물로 변화 시킨다.

고흐는 비평가 알베르오리에게
'사이프러스는 시골풍경의 전형입니다.
그것은 해바라기에 필적하는 것이고
또한 그 대조이기도합니다,"라고 쓰고있다.

확실히 해바라기가 아를시대의 마음의 상징이라면 ,
사이프러스는 생레미의 마음의 상징으로 ,
산도 하늘도 대지도 사이프러스의 호흡에 맞게 요동한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년



"사이프러스와 별과 길" (Road with Cypress and Star) 1890년


"창에는 오렌지색의 불빛이 비치는 낡은 여인숙과
높이 뻗어 오른 한 그루의 사이프러스가 똑바로 검게 서있다.
길에는 하얀 말에 끌리는 노란 수레 한 대와 그 앞을 산보하는 두 나그네.
굉장히 로맨틱하지만, 이것이 프로방스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흐는 오베르에서 고갱에게 이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상세히 쓰고 있지만,
이 편지는 미완성인 채 나중에 유품 중에서 발견되었다.
그의 사이프러스를 그린 작품 중 특히 유명한 것으로서
별, 사이프러스, 보리밭, 마차, 오두막집 등,
생레미 시대의 요소를 대부분 여기에 갖추어 넣었다.

그는 다른 편지에서 사이프러스를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답다.'고 하고 있다.
그 검은 맛의 초록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는 마음을 쏟았었다.
더구나 그것을 밤의 효과 속에서 그리기는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은 '흙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꽃'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별과 달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년.


사이프러스가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는 모양을..
또한 밤하늘이 마치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는 고흐가 보호자 한 명을 동반하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경계를 이루는 밭들,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균형잡힌 모습 환한 밀밭과 선명한 개양귀비꽃들
그리고 푸르게 꿈틀대는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나는
그 검은 실루엣에서 영감을 얻으며 들판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또한 하늘을 공격하기라도 하려는 듯
어두운 불꽃을 일렁이며 위로 뻗어오른 사이프러스만을
따로 습작하는 일에 전념했다

칠의 두께가 점점 더 두꺼워지는 그림의 스타일은
"별이 빛나는 밤"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고흐의 사이프러스 습작



"사이프러스와 밀들판" 1889년 6월




"사이프러스" 1889년 6월




"사이프러스 안에 두 여인" 1890년 2월




쌩레미 시대 (st, Rhemy. 1889~1890)
쌩레미 요양원에서 빈센트 고흐는 계속되는 환각, 발작증세와 싸우면서도
" 별이 빛나는 밤", " 해뜰 무렵의 밀밭 수확" 과 같은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몸과 정신이 병들고 쇠약해질 수록
예술가로서 재능은 더욱 빛을 발휘하였다.

생애의 마지막 3년 동안 제작한 작품들로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의 그림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은 많은 현대회화의 발전,
특히 수틴과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팔린 작품은 데생 1점 뿐이었다.

항상 가난했던 그는 그림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시급히 전달해야 한다는 확신과
형을 무조건 믿었던 테오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활을 유지했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1872년부터 테오 (668통)와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은
그의 목표와 믿음, 희망과 절망, 수시로 달라지는
건강상태와 정신상태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서,
위대한 인간기록이라 할 수 있는 독특하고 감동적인 전기자료이다.

출처 :
http://blog.empas.com/cunn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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