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호박의 썩음과 누룩이신 주님*

시원의 뜰 2015. 10. 2. 12:47

호박 한 덩이를 썩혔다
붉으레 자연석 호박 마냥
빛깔 곱던 놈이었다


하이얗게 피어오르던 분은
오사리 여문 놈답게
작은딸아이 혈색 고운 낯빛으로
탐스럽기도 했다


호박 범벅을 해먹을 참이었다
아니면 호박전을 굽던지
말려두고 먹더라도
그맛은 제격일 듯 싶었다


한 쪽 옆구리로
꿀물이 비치기 시작했다
당분을 주체못해
흐르는 것이려니


웬걸
조금씩 변하는가 싶더니
남편의 말인즉
호박이 썩고 있다는거다


어떤 것이든
그러하리라만
곪는 부위는
신속한 절단이 옳다는 진단


칼로 썩는 부위를 도려낸 뒤에
성한 부분만을 먹더래도
족할 터였다
나의 뱃속은
자족하고도 남음이 있으려니


나는 요리를 서두르는 대신
호박이 애당초 놓인 그 자리에
그대로 썩히리라 마음 먹었다


기억의 수면위로 꼬리 지느러미를 튕기면서
파드득 솟아오른
기억 하나


옛 조상들은
먹어서 배를 채우는 대신
한 해 겨울 한 덩이 호박을 썩혀
온 집안에 자생한 세균과 박테리아
호박이 흡입케한 지혜가 있었다는


썩으면서 정화시키는
호박을 보면서
썩으면서 발아하는
밀알을 생각하고
누룩이신 주님 생각도 하고,